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에세이

2025_01_20

by 바드마리노 2025. 1. 20.

          “이 세상에서 미움은 미움으로 멈추지 않는다. 미움은 사랑으로 멈춘다.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” - <법구경>

 

           어렸을 때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. 남이 잘못하여 내가 그가 미운 것인데, 왜 잘못하지 않은 내가 사랑을 품어야 한단 말인가? 케빈 스페이시가 나오는 소설 원작의 <케이-팩스>라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, 이 영화에서도 위와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. 정신병원에 있는 한 남자가 본인이 지구에서 1천 광년 떨어진 K-PAX라는 행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영화인데, (본인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) 프롯은 지구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. 지구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식인 ‘받은 만큼 돌려준다’, 즉 남이 잘못하면 그를 미워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보 같다는 것이다. 부처와 예수마저도 반박했지만,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던데.

 

           머리로 이해하진 못 했지만, 이런 맥락의 말들은 내 마음 어느 한 편을 깊게 찔렀나보다,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. 어느새 3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떨까. 오늘 저 <법구경>의 구절을 보며 눈물이 맺힐 것 같다면 나는 단순히 물러진 걸까? 요즘 내가 산책할 때, 사우나를 할 때, 요가할 때, 멍하니 있을 때 드는 생각은 온통 저런 생각뿐인데 말이다.

 

           남을 미워하는 건 확실히 괴롭다. 내가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 닥치게 되면, 남 탓을 하고 싶어지는 건 인간의 본능일까.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보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편해서? 그렇다면 방금 한 말에서 알아챌 수 있듯, 나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은 더더욱 괴롭다. 따라서 저 부처의 말씀은 남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된다, 즉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다. 진심으로 남을 용서해 본 적이 있다면, 내가 받았다고 여기는 당장의 손해를 떠나서 나의 마음이 깊은 곳부터 편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. 미움은 미움으로 멈출 수 없다. 오직 사랑만이 해결책이다. 가깝게 지내는 신부님 한 분께서 남을 사랑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다. 부처께서 미움은 사랑으로 멈춘다고 했지만, 사랑이 거저 떨어진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. 그렇다. 나를 사랑하는 것도, 남을 사랑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해. 사람은 참 신기한 존재다. 감정이 먼저 일어나고 행동이 그 감정을 따라가기도 하지만, 순서를 거꾸로, 행동이 먼저 일어나면 이후에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. 나와 남을 사랑하려고 한다면 정말 사랑이 생길지도.

 

           한 때 에세이를 9개월 동안 꼬박, 매주 A4용지 두 장 분량을 썼다. 10개월 쯤 되자 에세이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됐다. 매주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알맹이 없는 글을 쓰고 있는 스스로를 느꼈기 때문이었다. 하지만 글을 쓰고 있지 않으면서도, 언젠가는 다시 시작해야지 마음먹었었는데, 그 언젠가가 바로 요즘인 듯하다. 내 마음속 사랑에 대한 영감이 번뜩일 때, 함께 떠오를 생각을 기록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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